제목 : 폴 프롬 그레이스
개봉 : 2020. 1. 17
감독 : 타일러 페리
출연 : 크리스털 R. 폭스, 필리샤 라샤드, 시실리 타이슨, 브레샤 웹, 메카드 브룩스
1. 통쾌하진 않은 반전의 묘미
영화가 끝날 즈음 검은 화면에 엔딩 장면을 볼 때면 대박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영화가 있고 어딘가 찝찝해서 헛웃음이 나오는 영화가 있다. 우선 폴 프롬 그레이스는 통쾌하지만 찝찝한 영화다. 분명 주인공은 밝은 모습과 분위기로 시작하는데 그 속에서도 연출 탓인지 어두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레이스(크리스털 R. 폭스)를 연기한 배우의 침울한 표정이 더욱 암울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폴 프롬 그레이스는 넷플릭스 영화다. 쉽게 평점을 찾아볼 순 없었지만 대부분 반전의 묘미 덕에 후한 점수를 매겼다. 필자 또한 다소 불편하지만 반전 있는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감독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2. 정의와 합의 사이에 고뇌하는 우리
정의는 무엇인가? 그 답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도덕과 규범을 지키는 것만이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 적당한 선에서 불법이 아니라면 실리를 취하는 것은 개인과 집단에 정의가 아닐까. 누가 판다 하는 것이며 잣대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어려운 일이다. 본 영화에 등장하는 국선 변호사 재스민이 그렇다. 그녀는 재정 상황이 안 좋은 국선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열정과 정의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사건을 빠르게 쳐내는 일만 중요하다. 투입되는 인력, 자원 모든 것이 비용이기 때문이다. 재스민의 보스는 그녀에게 요즘 뜨고 있는 사건을 맡기고 이미 피고인이 죄를 인정했으니 형량만 협의해서 종결시키길 지시한다.
재스민은 어딘가 찝찝하지만 상사의 명령대로 피고인 그레이스 워터스를 만나게 된다.
3. 답답하지만 우직한 인물
재스민은 초보 변호사다. 그래서 답답하다. 실수가 많고 법정에서 판사에게 화를 내고 칭얼거린다. 관객으로 하여금 답답한 기분이 목 끝까지 차오르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그럼에도 우직한 인물이다. 그녀는 그레이스 워터스와 접견 후 결국 재판 회부를 결심한다. 여기서 다시 정의와 합의 사이에 고뇌하는 재스민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정의를 택했다. 하지만 세상은 합의를 원한다. 피고인이 죄를 인정했으니 선고하여 감옥에 가길 바라는 검사가 있다. 하지만 재스민은 어딘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본 사건의 쟁점은 그레이스 워터스가 남편을 살인했다는 살인죄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레이스는 살인죄를 인정했지만 정황이 그렇지 않다.
하나하나 드러나는 단서와 사건을 파헤치는 데 본 영화의 묘미가 있다.
4. 호의가 공포가 되는 세상
섀넌은 그레이스의 남편이다. 새 남편이란 표현이 맞다. 매우 매력적이고 피지컬이 좋은 미남이다. 그레이스는 사별 후 혼자 살고 있었다. 그러다 오랜 절친 세라의 소개로 한 전시회를 참여하게 된다. 그곳에서 섀넌과 그레이스는 인연을 맺게 된다. 사실 그레이스는 섀넌과 만나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젊고 멋진 남성이 중년을 넘긴 자신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에 의심을 품었다. 하지만 섀넌은 지속적으로 그녀에게 구애한다. 그레이스는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지만 섀넌의 진실함에 결국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지옥과 공포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오랜 기간 금융업에 종사한 그레이스는 졸지에 회사 돈을 횡령한 직원으로 몰려 해고당하게 된다. 이 사건의 중심엔 섀넌이 있다. 섀넌은 작정하고 그레이스에게 접근한 남성이다. 아주 못된 인간이다.
본성이 드러나니 새 여자를 들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레이스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렇게 사건은 벌어진다.
인간의 호의는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가. 가족 간의 호의만 진정한 호의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봉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제 막 시작한 인연이 베푸는 호의는 그 사람의 성향도 있겠지만 한 번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항상 사기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친다고 했듯이, 새로운 지인, 또는 오랜 지인 중 갑작스레 또는 이상하리만큼 호의를 베푼다면 참 서글프고 삭막하지만 의심부터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본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를 지켜야 하니 서글퍼도 지켜봐야 한다.
*영화의 결
인간은 거대한 벽에 부딪히고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여길 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 같다.
삶을 포기하기도 하고 다른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유야 어떻든 목숨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본 영화의 매력을 모두 담기엔 언급해야 할 반전 요소가 너무 많기에 더 자세한 반전은 영화 시청을 통해 확인하면 좋겠다. 유명한 영화는 아니지만 한 번쯤 고민이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 그래서 영화가 좋다. 너무 무의미한 메시지만 담은 게 아니라면 보통의 영화는 감독이 의도한 교훈과 생각이 있다. 하나의 문학작품을 읽는 기분이 든다. 그걸 표현하는 배우들도 참 멋지다.
실리와 의미의 간극을 줄인 초보 변호사 재스민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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