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클래식
개봉 : 2003. 01. 30
감독 : 곽재용
출연 : 손예진, 조인성, 조승우
1. 아날로그 감성은 사랑의 종착지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마음이 두근거리는 순간이 있다. 무더위가 지나고 낙엽이 하나둘 떨어지는 초가을의 첫 바람을 맞았을 때, 금요일 아침 듣고 싶은 음악이 거리에서 흘러나올 때, 맥주 한 잔 하며 뜻밖의 영화를 발견할 때가 그렇다. 모든 게 빨라진 시대다. 기술은 시시각각 진일보한다. 그런 가운데 천천히 우리의 감성을 터치하는 무언가는 너무 귀하고 반가운 존재이자 순간이다.
쿨하게 사랑하고 헤어집니다. 개인의 취향과 영역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사랑을 둘러싼 조금은 빠른 행태가 아쉽지만 한편으론 시대의 변화를 인정한다. 그럼에도 사랑은 아날로그 감성처럼 시간이 걸려도 묵묵히 뚝딱거리며 교감하는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금은 진중하고, 보다 책임감 있게 나누는 사랑의 묘미를 영화 클래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국민 여배우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손예진
영화 클래식 촬영 당시 손예진은 21세였다. 동화에 나올 것 같은 외모였지만 준수한 연기력 덕분에 드라마를 거쳐 영화배우로도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손예진은 클래식을 통해 단순히 예쁜 여주인공이 아니라 연기도 잘하고 감성을 건드리는 배우로 거듭났다.
클래식의 시대 배경은 60년대와 2000년대를 오고 간다. 곽재용 감독님에게 너무 감사한 부분은 워프 이론으로 과거와 현재를 묶지 않고 운명과 인연으로 과거 부모님 세대의 사랑과 대를 이은 자녀들의 사랑을 우연히 그리고 아름답게 풀어낸 부분이다.
손예진은 극 중 지혜와 주희 역을 맡았다. 우연히 발견한 엄마와 아빠의 연애편지를 읽으며 부모님의 사랑을 추억하는 딸의 모습을 잠깐씩 비춰주며 어느샌가 치열하고 가슴 아팠던 과거로 우리를 인도한다.
3. 운명적인 사랑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있다
주희(손예진)는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 온 유지의 딸이다. 집안끼리도 미리 점쳐둔 혼사 건이 있었으나 준하(조승우)와의 운명적인 만남 인연으로 둘은 연인이 된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그리는 가슴 아픈 이야기로 준하는 파병에 나섰다가 결국 참담한 일을 겪게 된다.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프고 두 배우의 연기가 정점에 이르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아무렇지 않게 연기하는 준하와 그것을 알아차리고 눈물을 흘리는 주희의 만남.
영화 장면 사이사이 느껴지는 감성은 글보다 영화를 통해 발견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오늘은 영화 묘사보다 영화를 보며 느낀 부분들을 쓰고 싶다.
4. 낭만을 떠올리는 세대에게 어울리는 멜로극
낭만은 무엇인가. 현실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이상과 감성에 젖는 청춘들의 전유물이다. 필자도 나이가 든 탓인가 요즘 연애 감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츤데레라는 단어가 부각되고 잘생겼지만 툭툭 거리는데서 오는 매력이 폼이 나는 그런 시대. 물론 과거에도 비슷한 맥락의 연애 서사는 존재했겠지만 어쨌든 요즘의 연애극이 더 오글거리고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과거의 음악, 과거의 표현은 조금 더 진중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겉멋과 사람을 유혹하는데만 머리를 쓰는 것이 아닌 가슴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전력 질주하던 90년대와 2000년대의 멜로극이 좋았다.
자극적이지 않아도 감성을 움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신파에 휘둘려 눈물을 쥐어짜게끔 강요하지 않아도
배우들과 함께 감정에 파고들었던 그 시대의 멜로극 말이다. 감정은 전염된다는 말이있듯 우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시큰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극에 몰입하고 매료되어 느끼는 공감은 또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클래식은 한치의 오차도 없다. 뻔하지도 않고 감정과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천천히 스며들었다 이내 미소를 짓게 만든다.
20대 초반에 클래식을 출연했던 신인 배우들은 모두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들은 2003년의 겨울을 기억하고 있을까.
마침 한겨울에 클래식 후평을 작성하고 있으니 다시금 그떄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가끔 울고 싶을땐 클래식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라도 현실을 잊고 감성에 젖어 괴로운 현실을 잊고 싶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클래식은 내게 영화 그이 상의 의미를 준다. 청춘이고 기록이며 기억의 한 조각이다.
*영화의 결
영화 클래식은 당시 신인으로 부각을 나타내고 있던 조인성의 역할 부재로 옥에 티라면 티일 정도의 잡음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조인성의 역할이 영화 장치 중 가장 중요한 우연히, 우연히, 우연히 그러나 반드시 만난다는 영화 대표 포스터에 표기된 글만큼 강렬했던 것인데 정작 개봉하고 보니 조인성은 극을 완성하기 위한 오브제 같은 느낌이었다. 배우 입장에선 아쉬움이 많이 묻어났을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조승우란 배우를 다시 보게되어 참 좋았다. 당시 필자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미남상이 아니었음에도 사람이 저렇게 크고 멋지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 인물이다.
누군가 멜로영화 중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하지 않고 클래식을 추천하고 싶다.
마음이 아리지만 삶을 돌이켜 볼 수 있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영화다.
클래식은 제목 만큼 한국 멜로 중 클래식이 되었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른다면 헤리티지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생각해보면 멜로영화보다 좀비극, 격정적인 사랑, 막장 스토리가 판을 치는 요즘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돈이 되지 않는 영화는 인기를 얻지 못하고 결국 예술은 배고픔이란 공식을 당연시 만드는 슬픈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소중한 멜로 영화가 한편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아, 요즘 ' 그해 우리는 ' 이란 드라마가 재밌다고 하는데 클래식이 주는 여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길 기대가 된다.
올 겨울이 가기 전에 클래식 한편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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