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악마를 보았다
개봉 : 2010.08.12
감독 : 김지운
출연 : 이병헌, 최민식
1. 논란의 연출과 파장의 연속
악마를 보았다가 개봉한 지 10여 년이 흘렀다. 지금 다시 봐도 어딘가 섬뜩하고 잔인하면서 디테일한 대사와 연출에 소름이 돋는다. 악마를 보았다가 개봉했을 당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었던 것 같다. 필자 또한 작품을 보고 나면 감정이입이 많이 되는 편이기에 굳이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 영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평단의 이야기가 흥미를 돋웠다. 특히 내용적인 부분보다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병헌과 최민식 배우의 연기가 단연 일품이라는 평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는 앞뒤 잴 것 없이 듣는 것처럼 필자 또한 좋아하는 배우가 찍은 영화는 스토리를 배제하고 찾아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영화를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정서적으로 도움되지 않는 영화다. 무수히 많은 논란과 연출 그리고 파장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귀결점은 하나로 통했다. 그럼에도 악마를 보았다는 영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2. 진정한 악마에겐 일말의 인간미조차 찾아볼 수 없다
먼저 절대악인 장경철(최민식)이 수현(이병헌)의 약혼녀를 살해하는 장면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극에 다른 분노를 일으키고 약혼녀를 잃은 수현의 감정 표현을 이병헌은 정말 실감 나게 표현했다. 가슴이 찢어지고 천지가 뒤엎어지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나마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현은 경호요원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사건이 아프게 다가온다. 연인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의의 사고로 지킬 수 없음을 그리고 불의의 사고가 최악의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수현은 법의 둘레가 아닌 본인이 자처하여 장경철을 심판하러 나선다.
그녀가 겪은 고통을 그에게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결심을 한다.
3. 악마와 악마의 대결에서도 지지 않는 대악마
사실 수현은 한번에 장경철을 찾지 못했다. 성범죄 전력이 있으면서 수배 중인 인물들을 대상으로 죄를 심판하던 중 마지막으로 찾아간 장경철의 집에서 약혼녀의 반지를 발견하고 확신에 차 복수를 시작한다.
장경철은 악마다. 그런 그가 수현에게 호되게 당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장경철은 여자를 대상으로 범죄를 거듭하면서도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그저 눈에 띄는 대로 범죄를 저지를 뿐이다. 마치 짐승과 같다. 그런 그에게 위치추적기를 붙이고 도청장치를 심어놓은 수현은 그가 다니는 곳곳마다 그를 저지하기 위해 나타나서 위해를 가한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히어로 영화를 보면 히어로vs히어로가 대치하는 장면은 매우 귀하다. 대체로 히어로는 악당과 빌런을 물리치는 역할이다. 본 영화의 히어로를 굳이 말하자면 이병헌이지만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악과 악이 대치하는 장면이다. 최민식을 태운 택시 강도들이 낙엽처럼 쓰러지는 대치 장면에선 아주 잠깐이지만 악마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냥 서로가 자멸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4. 복수는 복수를 낳고 악마는 악마를 만든다
영화는 계속 같은 내용을 반복한다. 수현은 장경철에게 끝나지 않는 지옥을 경험하게 한다. 한 번에 그를 죽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수현이 바라는 복수가 아니다. 아주 처절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에 다른 고통을 경험하게 한다. 그래야만 죽은 수현의 약혼녀를 위로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사냥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장경철 또한 범인이 아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사이코패스의 악은 점점 발전해 나간다. 그리고 수현을 향해 또 다른 복수를 시도한다. 결국 수현은 약혼녀 외에도 많은 사람을 잃게 된다.
수현은 또 깊은 수렁속으로 빠져든다. 헤어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매우 불편한 장면의 연속이다. 굳이 또다시 가족을 건드는 연출을 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내용 전달이 가능했을 것 같은데 아마 감독은 복수의 연속을 보여줘야만 악의 끝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자괴감과 분노로 본인마저 잠식당하는 수현과 본인이 가장 또라이면서 수현을 향해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라고 외치는 장경철의 악의 순수함의 대치는 어떻게 끝이 날까.
5. 관객은 그들에게 악마를 보았다
통쾌하지 않다. 통쾌할 수 없다. 이미 수현의 약혼녀가 죽은 도입부터 악마를 보았다는 매우 불편한 영화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감독은 복수의 종말을 표현하고자 애썼다. 장경철에게도 자식이 있었는데 수현은 마지막 복수를 장경철 자식의 손에 맡긴다. 의도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진 모르겠으나 가족에게 죽임을 당하는 엔딩은 아마 수현이 생각한 가장 극에 달하는 고통의 주입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결국 수현은 복수에 성공한다. 하지만 복수에 성공하고도 수현은 오열하며 영화의 막이 내린다.
그렇다. 수현은 언뜻보면 복수에 성공한 것 같지만 다른 의미에선 그렇지 않다. 그는 장경철에게 고통을 주입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인간의 악을 경험했고 사실 표현되진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어떤 희열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장경철이란 싸이코패스가 사람을 해했을 때 느끼는 그 쾌감을 수현 또한 느꼈는지도 모른다.
극한의 고통을 주기 위해선 보통의 잔인함을 넘어서야 한다. 수현의 잔인함은 회를 거듭할수록 강해졌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그가 느낄 또 다른 고통과 인간에 대한 회의를 이병헌은 오열함으로써 잘 표현했다.
악마를 보았다는 이중적 의미가 담긴 제목이 아닐까 한다.
악마를 좇는 수현의 모습에서도 악마를 보고야 마는, 주인공 또한 악을 좇다 악이 되어버리고 마는 아이러니한 상황 말이다.
*영화의 결
정말 광기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두 배우의 연기가 본 영화의 극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이병헌의 디테일한 표정과 연기가 보고 싶어 특정 장면을 계속 본 적도 있는 것 같다.
이게 실제가 아니고서야 어찌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경외감이 든다.
극을 촬영하며 최민식의 유명한 일화도 있다. 최민식이 집에 들어갈 때 동네 주민분이 웃으며 아는 척을 하자 왜 저 사람은 나를 보며 웃지라며 자기도 모르게 장경 철화 된 무서운 일화 말이다.
배우들은 참 힘든 직업인 것 같다. 때론 세상 모든 사람이 되었다가도 되고 싶지 않은 인물을 표현하면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니 말이다.
추천하긴 조금 망설여 지지만 두 배우의 연기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한여름보다 가을과 겨울사이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보길 바라며 세상에 평화가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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