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나리
개봉 : 2021. 03. 03
감독 : 리 아이작 정
출연 : 스티븐 연, 한예리,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윤여정
1. 왜 미나리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왜 감독은 주제로 미나리를 선택했을까. 미나리는 약용 음식이라 불리며 한의학에선 독소를 배출하는 해독작용이 있다. 해독과 영화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아마 미나리가 가진 끈질긴 생명력,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특유의 붙임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결국 우리나라의 민족성 그리고 시대적 배경을 어우르는 매개체가 여러 살 이해 풀인 미나리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잔잔하면서 처절하다. 그리고 끝에 가선 결국 우연과 필연이 만나 해내고야 만다. 역시 영화가 주는 울림은 배우의 연기력도 좋지만 극의 흐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할 때 카타르시스가 폭발한다.
비록 살아본 경험은 아니지만 간접 체험을 통해 미나리가 그리는 시대상에 대해 끄적인다.
2. 가장의 책임은 무겁다
제이콥(스티브 연)은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는 네 가족의 아버지다. 한국 교포의 삶을 절실히 보여주는 가장의 모습이다. 보통 기술 숙련도가 높거나 엘리트가 아니라면 소위 3D업종에 종사하게 된다. 제이콥(스티브 연)은 특별한 재주 탓인지 막노동이나 청소보다 독특한 일을 한다. 바로 병아리 감별사다. 병아리의 수컷과 암컷을 구분하는 일이다. 그곳에서 제이콥은 능력을 인정받아 제법 급여를 받지만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다.
여기서 첫 번째 메시지를 던진다. "먹고살 만한 것은 좋은 것 아닌가"
답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지금 하는 일이 미래의 안정성을 보장하는가를 고민해보면 그렇지 않다. 언제까지 병아리 감별사를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반복되는 노동은 대체되기 쉽다. 사용자가 급여를 깎으면 꼼짝 못 한다. 이러한 상황을 미리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스티브 연은 더 큰 꿈을 안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모든 재산을 털어 불모지와 같은 땅을 사고 그 위에 덩그러니 놓인 이동식 컨테이너에 거주하며
땅 위에 우리의 농산물을 키워 판매하는 꿈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3. 부부는 서로 달라야 잘 산다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해내는 모습을 한 번은 보여줘야지 않겠냐는 제이콥의 의지와 꿈은 그녀 앞에 무의미하다.
막내아들 데이비드(엘런 김)의 심장병 탓에 언제 병원을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움직일 수 없는 이동식 컨테이너가 그녀는 불편하고 불안한다. 하지만 제이콥은 태평하다. 물과 공기가 좋은 곳에 살면 심장병은 금방 나을 수 있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말을 한다. 그러다 결국 데이비드의 심장병이 악화되고 급히 병원에 갈 일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둘은 갈등에 부딪힌다. 누구의 말이 맞다고 볼 순 없다. 아버지의 입장도, 어머니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아버지는 포기할 수 없다. 어머니는 병아리를 감별하더라도 당장 안정적인 삶이 중요하다. 그렇게 둘은 좁혀지지 않는 이견을 보인다.
그럼에도 영화를 끝까지 보면 이 네 가족이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게 현실과 이상이 공존해야 무언가 삶에서 얻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제이콥과 모니카(한예리)를 보며 치우치지 않는 중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아카데미의 주역, 할머니는 강하다
순자(윤여정)는 모니카의 엄마다. 그녀는 불현듯 나타난다. 아메리카 드림에도 맞벌이는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었을까 순자는 앤과 데이비드를 돌보는데 집중한다. 순자는 모니카를 길렀던 그대로 손자 손녀를 대한다. 그런 할머니가 조금은 불편하다.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한국의 정서는 다소 맞지 않다. 화투를 치고 한국 음식을 해 먹는 모든 과정이 낯설다. 특히 순자와 데이비드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데이비드의 병세가 나아지면서 순자의 병세가 깊어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할머니 손은 약손이라며 손자의 배를 어루만지는 소망처럼 보이지 않는 힘에 이들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5. 절망 속에 핀 희망의 미나리
영화 미나리의 줄거리는 스펙터클하지 않다. 잔잔하게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는 교포의 생존을 보여준다.
하늘은 두드리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고 했다. 결국 제이콥은 농산물을 팔 수 있는 거래처를 찾는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풍으로 마비가 온 순자의 실수로 농작물이 모두 타버린다. 주인공들은 망연자실한다.
순자는 말이 없다.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넋이 나간다. 변병도, 사과도 못한 채 마음의 동굴로 들어간다.
타버린 잿속에서 발견된 미나리 한 줌.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단 하나의 메시지를 한 장면으로 표현한다.
시간이 지나 우연히 제이콥과 데이빗은 순자와 데이비드가 종종 갔던 개울가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순자가 심은 미나리을 발견한다. 미나리의 생명력에 영화는 다소 우울한 분위기를 벗어난다.
미나리의 생명력이 찬란하게 빛난다. 초록잎 하나하나가 희망을 상징한다. 미나리는 억세다.
따로 자라는 법이 없다. 마치 그룹 지어 다니듯 옹기종기 모여있다. 햇빛에 비친 미나리는 제이콥 가족의 미래를 상징한다.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면 대한민국의 민족성을 드러낸다. 어디서도 잘 자라고, 한 곳에 뭉쳐 다니며, 이득이 되는 존재.
잘 모르지만 제이콥 가족의 뒷 이야기를 다룬다면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모범 사례가 되어있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