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감시자들
개봉 : 2013.07.03
감독 : 조의석, 김병서
출연 : 설경구, 정우성, 한효주, 이준호
1. 경험이 능력이다
영화 감시자들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원작이 있는 영화인 줄 몰랐다. 감시자들은 홍콩영화 '천공의 눈'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천공의 눈이란 표현이 비유가 좀 더 멋있긴 한데 직관적인 제목으로는 감시자들이 제격인 것 같다.
감시자들의 스토리는 복잡하지 않다.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이 범죄 조직을 좇고 소탕하는 내용이 전부다. 그럼에도 이영화가 550만이란 흥행 스코어를 달성한 이유는 배우들의 앙상블과 연출력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황반장(설경구)은 베테랑 감시반 형사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범죄자를 잡는다. 상당히 까칠하고 예민하지만 어딘가 상냥한 구석이 있는 전형적인 츤데레 스타일이다. 감시자들에서 설경구가 좋았던 이유는 설경구 연기 특유의 처절함이 덜 묻어나서 좋았다. 과하게 소리 지르지 않고 지나치게 그에게만 몰입되지 않아도 되는 극의 흐름이 집중력을 배가시켰다.
세월의 흐름을 적당히 이겨낸 황반장의 연륜이 빛을 발하는 영화다. 때론 참신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만이 능력이라 치부되지만 결적적인 순간엔 경험이 모든 걸 이겨낸다. 위기에 강한 연륜의 황반장 캐릭터를 보는 맛이 있는 영화다.
2. 천재성은 반칙이지
대중은 먼치킨에 열광한다. 필자도 그렇다. 현실에 없는 캐릭터를 마주했을 때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먼치킨은 대리만족을 가장 강하게 충족시켜주는 대상이다. 그렇다면 하윤주(한효주)는 먼치킨일까. 필자의 생각은 먼치킨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하윤주는 천재성이 있다. 천재성을 과잉기억 증후군으로 표현할 수 도 있겠지만 관찰력과 기억력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 보면서 조금 오글거렸던 장면은 한효주가 과거의 기억을 곱씹어낼 때 손가락을 톡톡톡 치는 장면인데, 실제 캐릭터를 바탕으로 두고 그린 것인지 일부러 넣은 것인진 모르겠지만 일부러 넣은 것이라면 조금 작위적인 느낌이 강했던 장면이었다.
하윤주는 제임스(정우성)를 잡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임스는 신출귀몰하다. 나타나는 법이 없고 그림자로서의 역할만 자처한다. 모든 걸 감시하고 지시한다. 그렇기에 찰나를 기억하는 하윤주는 정우성의 천적이다.
극이 진행되면서 둘은 마주친다. 중요한 건 하윤주는 큰 피해가 없는 반면 다른 캐릭터들이 너무 많은 피해를 입는다. 다시 생각해보면 캐릭터 간의 밸런스가 탄탄한 느낌은 아니다.
그럼에도 하윤주는 매력적인 캐릭터이고 강인하며 제임스를 끊임없이 추적하고 잡는데 큰 공신이다.
3. 감시의 굴레
감시자들은 제목 그대로 감시가 반복된다. 흥미로운 부분은 '감시'라는 단어를 통해 극 중 캐릭터, 스토리 모든 것을 표현하는 데 있다. 감시반은 제임스를 감시하고 제임스 또한 감시자의 끝판왕으로 조직원과 형사들을 감시한다. 오히려 앞서 말한 먼치킨이 제임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 제임스는 강하다. 냉철한 사냥꾼이며 추격자다. 증거를 남기는 일이 없다. 본인에게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한다. 사람도 예외가 없다. 잠시 제임스와 연관된 캐릭터도 등장하지만 이내 제임스에게 죽임을 당한다. 제임스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제임스의 과거를 좀 더 그려줬다면 제임스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우성은 감시자들에서 악역을 맡았다. 보통 착한 사람, 멋진 사람, 좋은 사람을 주로 역할했던 그가 악역을 맡는다는 게 상상이 안됐지만 정우성은 악역으로서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그냥 멋졌다. 잘생겼다. 잘생겼다는 말을 언제 들어도 좋다는 정우성이 정우성 했다.
정우성의 외모가 빛을 발하지 않아서 좋았을 만큼 제임스를 잘 표현한 것 같다.
4. 억만금을 주면 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은 몇십억을 주면 저런 일을 할 수 있겠냐고 서로 묻는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50억을 벌 수 있다면 제임스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일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법치국가의 국민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냥 상상일 뿐이다. 매우 단순하고 가벼운 상상 말이다.
우선 성향이 그렇지 못하다. 50억이 웬 말이냐. 500억을 준다고 해도 이미 사건을 계획하는 순간부터 정신이 아찔하고 손발이 벌벌 떨릴 것 같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타고난 배짱, 타고난 정신 그리고 사이코패스 적인 기질을 갖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500억 주면 난 당연히 할거야 라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해라.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조금 다른 비유이겠으나 왕관의 무게를 견딜줄 아는 자만이 왕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평소 저 돈 주면 나도 쉽게 하겠는데 하는 일들은 생각보다 무거운 일들이 많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일은 즐거워 보이나 이면에 숨어있는 압박감, 책임감을 느끼고 나면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이따금 극중 캐릭터를 현실로 대입하여 상상하는 일은 흥미롭다. 너무 과하지 않게 가볍게 상상하며 접근하는 과정은 영화를 곱씹으며 다양한 맛을 즐기는 과정이다. 마치 좋은 육고기를 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할 때 첫맛과 끝 맛을 달리 느끼는 미세함처럼 말이다.
*영화의 결
시작이 반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라는 말이 있다. 배우의 역사를 필모라고 표현하는데 정우성의 필모는 이미 중년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10대 때부터 연기했으니 이제 30년이 넘어간다. 본문에선 이야기 못한 배우이자 가수 이준호가 그렇다. 감시자들에서 이준호의 역할은 조미료 정도이다. 큰 비중은 없지만 중간중간 극의 긴장감과 느슨함에 한수를 두는 캐릭터다. 이때만 해도 이준호의 시작은 가수가 잠깐 영화에 출연해서 배우 업에 기웃거리는 수준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해 한해 필모를 쌓아간 그가 이젠 주연급으로 성장했다. 영화에 출연하고 드라마에 나오며 연기에 원숙미를 더했다.
재능은 둘째고 결과 또한 차순위다. 우선 하는게 중요하고 꾸준히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감시자들은 단순 스릴러 킬링 타임용 영화 일 수 있겠으나 배우 이준호의 재발견, 그리고 인생에 있어 꾸준히 한다면 제법 괜찮은 삶을 산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 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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